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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 Boris Berezovsky(pf), Dmitri Liss(cond), Ural Philharmonic Orchestra
e깊은연못
2012. 7. 11. 01:49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 |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yevich Rachmaninoff(Rachmaninov), 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첫 부분의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부분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장중하고 아름답다. 누가 들어도 단번에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애수에 찬 감미로운 2악장, 빛나는 3악장도 많은 영화, 드라마, CF에 삽입되어, 이 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서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 차이콥스키가 죽었을 때 그를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경향을 회고적이라고하기도 하고, 그를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이 보았을 때는 좀 구닥다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던 간에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무지막지한 악평을 들어 작곡에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서 그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협주곡 2번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그 후로 확고 부동하게 된다. 그런 사연으로 이 곡이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도 활동하여 큰 명성을 쌓는데, 그런 계기로 나중에 러시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러시아 쪽 음악가 중 그와 비슷하게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경우가 여럿 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도 그 중 한 사람인데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가 자신의 곡, 특히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 출처. 네이버 캐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