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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 에서 본 고갱의 정물화
    ◆ 청취자세상/┗⌒여행과 음악 2012. 9. 28.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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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세느강 가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니 그 발상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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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봄이나 여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급한 마음에 저질렀던 겨울의 파리여행,

     

    눈이 조금씩 내리던 그 겨울의 파리여행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는지, 남가주의 뜨거운 태양이 지겨웠기에,

    오랫만에 두터운 코트의 깃을 올리고 움추리며 온종일을, 일주일동안을,

    헤메고 다녔던 파리의 거리들...

    눈이 시리도록 다시 가고 싶습니다.

     

     

     

    Everything 696.JPG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인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얼마나 많이 있던지,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르노아르, 세잔느, 시슬리, 피사로, 드가, 로트렉, 등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그림에 무지, 무식한 트리오도 미술관에 들어서자 마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넋이 나갈 정도로 매료되어

    사진찍기를 허락하는 오르세가 마냥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에 익숙한 그림들과 tag까지, 

    (tag를 담아오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그림인지 다 잊어버릴까봐...)

    정신없이 사진기에 담느라

    애석하게도 그림 한 점, 한 점을 감상하는 여유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파리기행을 어려편 블로그에 올리면서도

    여지껏 오르세에서 찍어온 사진도 올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다른 곳들도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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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굴레>의 작가 섬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 1894-1965)의

    <달과 6펜스>를 학창시절 읽은 기억은 있지만 제목만 생각나고 내용은 생각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조블의 푸나무님의 <외설적인 정물화 - 달과 6펜스>라는

    포스팅을

    아주 흘미롭게 읽는 중에 인터넷을 다 뒤져도 찾지 못했다고

    폴 고갱의 섹시한 정물화, 외설적인 정물화(?)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기에...

     

    외설적인 정물화?,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인 트리오도

    정물화라는 자체가 섹시하거나 외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데...라고

    생각을 하면서 오르세 미술관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오랫만에 다시 찬찬히 검토하였습니다.

    혹시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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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에 담아 온 고갱의 그림이 열 점정도 있는데

    정물화는 단 한 점이 있네요.

     

    고갱이 타히티를 처음 방문했던 1891년에 그린

    <Les repas ou Les bananes>

    "식사" 또는 "바나나"라는 제목이 붙은 정물화인데

    <바나나가 있는 식탁>이라는 제목은 어떨까 싶습니다.

     

    바나나 한 꾸러미와 몇 개의 과일, 멀겋게 보이는 국물이 있는 큰 그릇,

    물병인지 포도주병인지, 예쁜 병이 하나, 작은 빈 그릇 하나,

    나이프를 쓸 일도 없을 것같은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칼 한자루,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세 사람,

    엄마와 두 아들...

    오른쪽 아들은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인지 식탁을 심난하게 바라보고 있고

    왼쪽의 어린 아들은 그나마 좀 마자라고 어눌해 보이고,

    비록 가난하지만 눈빛이 강력하여 강인하게 보이는 어머니,

     

    세 사람이 먹기에 바나나나 풍성할까, 너무나 빈약한 식탁과

    어눌해 보이는 아들이 있는 고갱의 정물화,

     

    섹시하거나 외설적으로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서글퍼 보여서 나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커피 한잔 얻어 마시려고 했더니

    상은 물 건너 가고...

     

     

     Paul GAUGUIN | Still-life with fan [Nature morte à l'éventail]

    <Nature morte a l'eventail>, 1889년  (image from web)

     

    그런데 맨처음 댓글 다신 멜라니님이 말씀하신

    <Still-life with fan>이라는 고갱의 정물화입니다.

    보는 자에 따라서 섹시하게 볼 수도 있겠다고,

    워낙 그림에 지식이 많으신 멜라니님이니까 찾아 보았어요.

    섹시해 보이시나요?  그런 것같기도 하고...

    오르세에 있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때는 보지 못했습니다.

     

     

    *** 

     

     

     

     

    내친 김에 오르세에서 찍어 온

    외젠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1848-1903)의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Haymaking in Brittany>, 1888

     

     

    <아름다운 앙젤>, 1889년

     

     

     

    <슈페네커의 아틀리에>, 1889년

     

     

    <아레아레아, 기쁨>, 18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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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갱의 <모자를 쓴 자화상> (1893-1894)

    고갱이 1895년에 두번째로 타히티로 떠나기 전에,

    프랑스에서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라고 하네요. 

     

     

      

    <브르타뉴의 풍경>, 1894

     

     

     

    <바이루마치>, 1897년

     

     

    <하얀 말>, 1898년

     

     

    얼마전 켄터키 주에 가서 한없이 넓은 초원 위의 말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 그림을 더욱 유심히 보았습니다.

     

    고갱은 1891년에 타히티에 가서 지내다가 1893년에 다시 프랑스로 갔다가

    2년 뒤, 1895년에 다시 타히티에 가지요.

    이 그림은 고갱이 가장 사랑하던 딸 Allene이 1897년에 죽은 다음 해에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고갱은 딸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지병과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좀 어둡고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그림으로

    물을 먹고 있는 하얀 말의 모습도 왠지 어색하게 보이고

    붉은 말은 남녀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이 타고 가고

    그나마 오른편 위쪽에 흐릿하게 보이는 회색말을 탄 사람은

    말을 꺼꾸로 타고 있어서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좀 으시시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황색의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

    성경적인 그림도 많이 그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그림도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나오는 계시록(제6장)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궁금하기도 하네요.

    물론 그런 내용의 해설을 찾지 못했지만...

     

     

     

    <And the Gold of Their Bodies>, 1901년

     

     

     

    외젠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6.7. - 1903.5.8.)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갱하면 그가 한 때 고흐의 초대로 프랑스의 남부 아를에서 고흐와 함께 지내다가

    고흐와 다툼으로 인하여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이 먼저 생각나는 화가입니다.

     

    어느 예술가의 삶이 평탄하기만 할까마는 고갱도 참 파란 만장한 세월을

    지낸 것같습니다. 18개월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미 페루의 리마에서 살다가

    파리로 돌아와서 선원으로 항해를 하기도 하고 주식중계상을 하다가

    늦게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외면하고 순수함을 찾아

    1891년 고갱은 파리를 떠나 타히티로 가서 그곳에서

    타히티의 풍물과 전설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지만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는 못하였지만

    그 만의 독특한 색상이나 스타일은 인상주의 보다는 상징주의나 표현주의에 가까워

    후에 뭉크나 피카소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1893년에 파리로 돌아왔지만 1895년에 다시 타히티에 가서 지내다가

    1901년에 도미니카 섬으로 가서 그곳에서 1903년에

    가난과 고독과 병으로 지내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타히티에 간 이유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순수한 땅의 원시적이고 단순한 사람들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땅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되돌아갈 생각입니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입니다."

     

     

    그가 끝가지 추구한 것은 원시적인것, 원초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

    그러나 되돌아 가고 싶지만 결코 되돌아 갈 수 없기에

    우리는 항상 아쉽고 외롭고 슬픈 것은 아닌지... 

     

     

    (다음은 오르세에서 본 고흐의 그림들을 올리겠습니다.)

     

      

     

     

     

     

     

     

    <My Prayer>

    The Platters가 부릅니다.

    참 오래된 노래이지요.

    왜 이 노래가 듣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When the twilight is gone and no songbirds are singing
    When the twilight is gone you come into my heart
    And here in my heart you will stay while I pray

    My prayer is to linger with you
    At the end of the day in a dream that's divine
    My prayer is a rapture in blue
    With the world far away and your lips close to mine

    Tonight while our hearts are aglow
    Oh tell me the words that I'm longing to know

    My prayer and the answer you give
    May they still be the same for as long as we live
    That you'll always be there at the end of my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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