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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의 드가(Edgar Degas)의 발레리나들과 마종기의 <무용>
    ◆ 청취자세상/┗⌒여행과 음악 2012. 10. 10. 10:50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진기에 담아 온 

    드가(Edgar Degas)의 발레리나들의 그림을 보면서

    在美 의사이며 시인인 마종기 시인의 詩가 생각났습니다. 

     

     

    내게는 아주 오래되어 누렇게 바래고 책표지는 너덜거리는

    <평균율 2>라는 김영태, 마종기, 황동규,

    3人의 초창기의 시집이 있거든요.

     

    1972년도에 김영태님이 직접 사인해 주셔서

    40년간이나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시집인데

    김영태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그 분의 사인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그런데 김영태시인은 벌써 세상을 달리했더군요.)

     

    1972년에 출간된 이 시집 안에는

    마종기님의 미국에서의 초창기의 생활이 그려져 있고

    무용가인 어머니에 대한 詩 <무용 2>와 <무용 4>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을 올리려면서 그 분의 소식이 궁금하여 검색하니

    이화여대에서 무용과 교수직을 은퇴를 하시고

    노후에 미국에 오셔서 지내시다가 작년(2011년 9월 3일)에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것을 알았습니다.

    거의 1세기를 사셨네요.

    무용(운동?)을 하셔서 장수하신 것인지...

     

    일제시대 최승희의 무용을 보고 무용가의 꿈을 키우셨다는

    박외선님은 무용가로, 교육자로

    한국의 현대 무용사에 남기신 업적이 대단하신 것같습니다.

     

     

    Everything_561[1].jpg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의 한 사람인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라고 하는 아버지의 뜻을

    끝내 거역하고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많지만 그는 특히나 모델을 세워 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가 즐겨 그린 것은 무대에서나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 음악가 등, 움직이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냈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아버지 마해송씨의 청빈하다 못해 가난한 삶이 싫어서

     

    문학가가 되기가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학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친구와 상의한 후

     

    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고 1966년에 미국에 왔지만

     

    문학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미국에서도 꾸준히 시를 썼습니다.

     

     

     

     

    <舞踊 2>

     

    1.

     

    당신은 始終/ 맨발로 舞踊하지만

     

    우리 어머니/ 겨울눈도 뿌리는데

     

    東大門 시장에서/ 구제품 구두를 사신고

     

    출퇴근 뻐스에 밟히면서/ 꿈같이 꿈같이 舞踊만 아는 어머니

     

                                                      -<무용 2>에서-

     

     

     

     

    <무용 4>

     

    常夏의 하와이 와이키키 海邊에서 토스킹 씽글에 넥타이까지 메고

    큰 大字로 누운 비키니 女人을 못쳐다보고,

    닦아 신은 66年製 금강구두 속에는 太平洋의 모래가 모여 깔깔거리고.

    에샤뻬, 굿뻬,

    엉 . 뛰 . 트롸 . 까트르.

     

    그러면 시카고 오하라 空港에 처음 내려, 기죽지 않았던

    엽전 있거든 손들어 봐라.  士官學敎 軍醫官 時節에 익힌

    만만한 자신은 內服 속에 숨고, 어깨 누르던 空港광장에서

    같은 말을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다.

    에샤뻬, 굿뻬.

     

    인턴 시작 한 달만에는 特別講義, 應急室의 많은

    美國 醫師 제치고 診斷내려 준 名醫노릇으로....이것은 이다.

    이것은 진드기가 아니고 이다.  현미경 속에 소중히 보이는 눈에 익은

    이 한 마리.  講義 제목은 이와 진드기의 鑑別,

    에샤뻬, 굿뻬,

    꽈당탕,

    舞踊을 끝내고 내가 넘어진 것을 본다.

    진한 코리언의 코피가 흘렀다.

    코피야 흘러라, 흘러라.

     

    6個月째는 회충약을 찾으려고 온 都市 온 藥房을

    다 뒤지고 헛탕이었다.  富者나라에는 奇生蟲이 없어,

    싸고 좋은 韓國에서 空輸해다 먹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保健社會部의

    기생충박멸 計劃書, 횟 배로 말라죽은 우리나라 少年아.

    에샤뻬, 굿뻬,

    엉. 뛰 . 트롸 . 캬트르.

     

    에샤뻬, 굿뻬,

    五年이 지났다.  6年이 된다.

    나는 이제 점잖은 관중이 되어

    많이 여유있는 미소로

    피에로의 춤을 본다.

    내 춤을 보던 옛날 관중이

    엉성한 表情과 돈으로 춤추는

    外國都市,

    술 한 잔을 마시고

    保護色을 턴다.

    그러나 에샤뻬, 굿뻬.

     

     

    이 詩는 마종기 시인이 1966년 미국에 와서 인턴생활을 하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그 당시 미국생활은

    참으로 낯설고 힘든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참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픈,

    미국에 와서 사는 교민이기에 더욱 동감하며 읽었던 詩...

     

    싱글에 넥타이까지 메고...와이키키 해변을...ㅎㅎ

    저도 1974년 3월 하와이에 갔을 때

    와이키키 해변에서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양복을 입은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나마 그 당시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명동에 있던 금강구두...ㅎㅎ

    그 당시 제법 고급 신발이었는데, 저도 단골이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에는 속 옷에 이가 드글거리고

    일년에 한번씩은 학교에서 회충약을 먹였던 그 시절...

     

    세월이 참 많이 흐르고 많이 변해서

    금은 한류가 판을 치고 있는데....

    그 시절 그 때가 그립습니다.

     

     

    ********

     

    드가의 그림을 이야기 하다가 삼천포..

    아래는 오르세에서 찍어 온 드가의 다른 그림들입니다.

    그림설명은 아무래도 멜라니님한테 부탁할까 봅니다. ㅎㅎ

     

     

     

     

     

     

     

     

     

     

     

     

     

     

     

     

     

     

     

    The Pavane, Pavan, paven, Pavin, pavian, Pavin, or pavyn

    (It. Pavana, PADOVANA, Ger. Paduana) is a slow processional dance

    common in Europe during the 16th century (Renaiss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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