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에서 로베르트 헤크만의 바이올과 마리에 헤크만=헤르티히의 피아노로 이루어짐
브람스는 40세가 지나 처음으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출판했다. 이 곡이 보통 제1번 바이올린 소나타로 불리지만 실제로 이 곡은 브람스의 다섯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이다. 그 중에는 청년시절에 만든 작품으로 슈만이 출판을 권했지만, 리스트와 레메니의 충고로 출판을 보류했다가 끝내 잃어버린 a단조도 있고, 브람스의 제자인 옌너가 말하는 3개의 소나타도 있다. 현재까지 작품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주로 브람스 자신의 엄격한 자기비판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어쨋든 브람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만을 남기고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비교하면 수는 적지만 낭만파 바이올린 소나타 중 최고의 걸작에 속한다.
[제1번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 협주곡과 전후하여 오스트리아의 베르타 호반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페르차하에서 만들어 졌다. 이 페르차하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모두 그곳의 경치를 연상시키듯이 상쾌하고 우아하며, 기품에 가득차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친구인 빌로트는 이 소나타에는 1878년 4월의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도 들어 있다고 보고있다. 실제로 북독일인 브람스가 따듯한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느낀 동경하는 마음, 남국의 정열적인 감정등이 이 곡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곡을 들어보면, 남국적인 밝고 명랑한 분위기와 함께 브람스 특유의 애수를 띤 서정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곡의 성격은 [비의 노래 소나타]라는 별칭이 잘 설명한다. 이 제목은 사실은 제3악장의 서두의 선율이 크라우스 그로트의 시에 곡을 붙힌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Op. 59-3]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브람스 창작 제3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다악장 작품에는 각 악장을 동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시키거나, 두 가지 주제를 같은 재료로 만들고 있는 것이 많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도 그런 작품의 예로 제3악장 서두의 주제가 제1,2악장의 최초 주제가 융합한 것처럼 되어 있는 외에도 각 악장의 주요한 선율은 모두 어떤 형태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 게다가 제3악장에서는 제2악장의 주제가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이 곡은 확고한 유기적 통일을 의도한 브람스의 제3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개인적인 초연은 1879년 여름에 브람스 자신의 피아노와 요함임의 바이올린으로 행해졌다. 청중으로는 친구인 클라라 슈만과 헤르초겐베르크 부부등이 있었다. 공개 초연은 같은 해 11월 본에서 로베르트 헤크만의 바이올과 마리에 헤크만=헤르티히의 피아노로 이루어졌다. 1880년 짐로크사에서 출판.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A장조 Op.100
작곡 : 1880년 ㅣ 출판 : 1887년 짐로크사
초연 : 1886년 12월 2일. 빈에서 헬메스베르거의 브람스의 피아노
제1 바이올린 소나타는 아름다운 베르타 호반의 시원한 페르차하에서 만들어 졌지만, 제2번도 웅대한 풍경으로 둘러 싸인 스위스 툰 호수 근처의 시원한 툰 마을에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사이링거가 그의 저서 [브람스]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툰의 경치가 페르차하보다 웅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2번은 제1번 보다 힘차고 씩씩하며 알프스풍의 위엄이 넘치고 있다.
브람스는 1886년 여름부터 매년 여름을 스위스의 툰에서 지냈다. 툰에 머문 첫 번째 여름에는 새로운 친구가 많이 생겼고, 옛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며 밝고 즐거운 날을 보냈다. 그리고 독일 리트의 뛰어난 가수인 슈피스(Hermine Spies, 1857~1893)와 연예에 가까운 교제를 했다. 이러한 행복한 생활을 반영하고 있듯이 이 해의 작품은 [첼로 소나타 2번]과 함께 모두 밝고 느긋하다. 특히 이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로 전에 만든 첼로 소나타보다도 빛나며 명랑하다. 이것은 A장조라는 조성이 첼로 소타나 F장조의 조성보다도 장대하고 화려한 조성이기 때문일 뿐만아니라, 바이올린이 첼로보다도 높고 밝은 음을 내며, 주제의 성격이 간결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또 이 곡이 브람스의 전 작품 중에서 가장 선율적인 것에 속한다고 할 정도로 선율적이라는 것도 곡의 여유로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곡은 제1악장의 제1주제의 최초 3개음의 움직임 방법이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중의 '발터의 찬양가'의 선율(제65절)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찬양가 소나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 일치는 정말 우연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동기는 제1주제 뿐만아니라 제2주제에도, 제2,3악장에도 나타나며, 전곡의 통일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1886년 5월에 브람스는 툰으로 가서 같은 해 가을까지 이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브람스의 비방록에 따르면 이 해 8월에 2, 3곡의 가곡 외에 그로토의 시에 의한 합창곡[가을에]와 [첼로 소타나 F장조], c단조의 3중주곡, 그리고 이 A장조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만들어 졌다. 이 곡의 개인적인 초연은 툰 가까이의 베른에 있던 문필가인 비트만의 살롱에서 브람스의 피아노로 연주되었지만, 바이올린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공개 초연은 친구인 헬메스베르거(Joseph Hellmesberger, 1828~1893)와 브람스에 의해 1886년 12월 2일에 이루어 졌다. 출판은 1887년 짐 로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