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희궁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경희궁은 광해군 12년(1620)에 완공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은 정궁, 경희궁은 이궁으로 사용되었으며,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서궐이라고 불렀다.
숭정문
한창 때 경희궁에는 100여 채가 넘는 전각들이 있었으나 순조 29년(1829) 화재, 고종 20년(1883)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에 탔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들은 일제가 학교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헐어버려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품계석
1945년 해방이후 1978년까지는 서울고등학교가 자리하였으며, 1985년 숭정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들이 복원되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자정문
편전인 자정전
서암(瑞巖)은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이다. 바위샘이라는 뜻을 갖는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샘이 그 속에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두게 하였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바위에 깎아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태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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