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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그대였던가", 밀라노에 있는 음악가의 집(Casa di roposo per di Musicisti)과 베르디의 묘
    ◆ 청취자세상/┗⌒여행과 음악 2012. 2. 21. 10:29

    오페라를 별로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태리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사실은 매년 여름 거의 3개월 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이 열리는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오페라 한편이라도 보고 싶어서 페스티발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떠났고

    관광을 하면서 비록 여름 축제는 놓쳤더라도

    베르디, 푸치니, 롯시니 등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밀라노에 도착하여 하루만 묵고 다음날 바로 베로나로 향한 이유도

    9월 3일에 끝나는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발의

    오페라 한편이라도 보고 싶어서, 밀라노 시내는 여행을 다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구경하기로 하고 서둘러 베로나로 떠난 것입니다.

     

     

     

    verdi

    밀라노에 있는 음악가의 집(Casa di roposo per di Musicisti)

     

     

     

    그러니 밀라노에 오전에 도착하면 오후 한나절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밀라노에 있는 베르디의 무덤과 음악가의 집을 볼 예정으로

    호텔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예약을 하였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겸 구경을 하기 위해 호텔 주위를 걸어 다니면서

    무슨 음식을 먹을까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넘어버렸는지

    좀 전에 보이던 식당들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아, 시에스타(Siesta), 낮잠을 자는 시간?

     

     

    파리 여행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찍은 빈센트 반 고흐의 "시에스타"

     

     

     

    스페인에 가니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더니

    이태리에도 그런 시에스타가 있다는 것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밤 늦게까지 먹고 마시느라 오전에 가게를 열었다가

    점심 시간에는 문을 닫고 한잠씩 낮잠을 자야하는지, 오랜 전통이겠지만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은 어쩌라고, 야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태리에서 여행 중에 운전하면서 실수한 에피소드가 많은데

    시에스타 때문에 일어난 일화가 또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20유로 화폐를 집어넣었는데

    기계 작동을 잘 몰라서인지, 아무튼 화폐를 집어삼킨 기계가 작동을 하지 않아

    기름을 넣을 수가 없어 놀라서 사무실 쪽으로 가니 문이 닫혀있습니다.

    시에스타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가 오후 2시쯤, 3시까지는 한시간이나 남았는데

    20유로 때문에 금쪽같은 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는데

    다행이 자건거를 타고 오던 젊은 여자가 다가와 설명을 듣더니

    자기는 근처에 살기 때문에 20유로는 냈다는 영수증같은 종이로 나중에

    사무실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면서 그 종이를 받고 저희들에게 20유로를 주었습니다.

    20유로를 포기하고 갈 뻔했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만일 내가 그런 경우를 보았다면 그 여자같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어쨋든 곧 문을 닫을 기세인 빵가게가 있어서 주인의 눈치를 보며

    빵과 음료수로 요기를 때우고 천천히 부오나로티 광장쪽으로 걸어갔는데

    광장이라야 네거리 사이에 있는 크지 않은 공간인데 광장 전체를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광장 중앙에 있는 베르디의 동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베르디 (Giuseppe Fortunio Francesco Verdi, 1813. 10.10 -1901,. 1. 27)은

    이태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입니다.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가면 무도회>, <맥베스>, <오텔로>, <시몬 보카네그라> 등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거의 영웅같은 존재이며

    그의 오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태리의 북부 부세토(Busseto)에서 가까운 작은 농촌마을인

    론콜레(Roncol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밀라노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다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가까운 그랜드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18세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밀라노 음악원"은

    지금은 "베르디 음악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Verdi & his signature(from web)


    Giuseppe Verdi, Portrait by Giovanni Boldini(1886),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Rome


     

    베르디는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은퇴한 음악가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음악가 휴식의 집(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을 밀라노에 마련하고

    자신도 죽은 후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평소 베르디에게 자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해  안식처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음악가의 집"은 현재 약 55명의 은퇴한 음악가들이 살고 있고

    베르디도 그의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밀라노의 음악가의 집

    왼쪽은 베르디의 묘가 있는 곳이고 오른쪽 사진은 정문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집은 베네치아의 고딕 양식을 모방한 운치있는 3층으로된 저택이었는데

    음악가들이 살고 있는 위층의 아파트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노래하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와서

    음악가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은퇴를 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문 왼쪽으로 사무실이 있었고 정문에서 정면으로 중앙에 있는

    베르디와 그의 두번째 아내 조세피나가 묻힌 묘실은

    입장료도 없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묘실 안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畵가 사방을 둘러 싸고 있었는데

    비록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의 신 뮤즈들이 베르디를 보호하고 있는듯했습니다.

     

     

     

    verdi 077.JPG

    Giuseppe Verdi의 묘

     

    Giusepina Verdi Strepponi의 묘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

     

     

    베르디와 그의 두번째 아내 주세피나(Giusepina Verdi Streoini)의 묘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그의 묘 위에는 쓰여있는 碑銘은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가 작곡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1840년 대는

    유럽 여러나라에서 왕정에 맞서는 진보적 사상의 물결이 일던 시대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태리에서도 조국 통일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국심이 유난히 강했던 베르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오페라를 통해서

    이태리의 독립과 통일을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위해 울었던 베르디의 오페라에 담겨진 애국심은

    오페라가 공연될 때마다 온 국민들을 울렸고 베르디에 대해 열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장례식(State Funeral)에는 정부 고위 관리를 비롯한

    수만 명의 행렬이 이어졌고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전국에서 온 음악가들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일명 "가라, 내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지휘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장례식 후 밀라노의 Cinitero Monumentale에 안치되었다가

    1개월 뒤 베르디보다 4년 전에 죽은 아내 주제피나가 잠든 이곳,

    음악가의 집에 이장되어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일명 <춘희>로 알려진 오페라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순박한 시골청년인 알프레도가 사랑을 고백하고 떠나자

    그 때는 알프레도의 고백을 비웃었지만

    그의 진정한 사랑을 뒤 늦게 깨닫고 부르는 아리아,

    "아, 그대였던가, Ah, fors'e lui"를

    Renata Tebaldi (1954)가 부릅니다. 

     

     

    "아, 그 사람인가, 그 사람인가

    내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 이

    사랑의 고민 속에 사로 잡는 이

    내 맘을 산란케 하는 이가

    그이였던가, 그이였던가

    상냥한 그의 음성이

    사랑을 속삭이고 나를 위로했네

    그대가 내 영혼 모두 빠앗아갔네

    내 가슴 깊은 사랑의 궁전에

    그이로 가득찼네, 오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