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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현대미술 : I I. Fang Lijun - 민대머리 건달들의 블랙유머
    ◆ 청취자세상/┗⌒미술과 음악 2012. 3. 6. 20:10
     
     

     

     

     

     

     

     

     

     

     

     

     

     

     

     

     

     

     

     

     

      

     

     

     

     

     

     

     

     

     

     

     

     

     

     

     

     

     

     

     

     

     

     

     

     

     

     

     

     

     

     

     

     

     

     

     

     

     

     

     

     

     

     

       

     

     

     

     

     

     

     

     

     

     

     

     

     

     

     

     

     

     

     

     

     

     

     

     

     

     

     

     

     

     

     

     

     

     

     

     

     

     

     

     

     

     

     

     

     

     

     

     

     

     

     

     

     

     

     

     

     

     

     

     

     

     

     

     

     

      

     

     

     

     

     

     

     

     

     

     

     

     

     

     

     

     

     

     

     

     

     

     

     

     

      

     

     

     

     

     

     

     

     

     

     

     

     

     

     

     

     

     

     

     

     

     

     

     

     

      

     

     

      

     

     

     

     

      

     

     

     

     

     

     

      

     

     

     

     

     

     

     

     

     

     

     

     

     

     

     

     

     

     

     

     

     

     

     

     

     

     

     

     


     

     

    중국 현대 미술의 위상은 최근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으며

    지난해 세계미술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중국은 39%를 차지해 미국의 25%를 넘어셨다.

    세계로 향해가던 중국 현대미술은 이젠 아예  중국을 예술의 메카로 만들어버릴 기세다.

     국내에서도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는 기회도 부쩍 더 많아졌다.

     

    그런데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다보면, 무언가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어색함과 위화감 그리고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을 받게된다

    우선 대부분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억압되고 지나치게 암울하거나 때론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때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유치하고 조잡하다고 느껴지기도하고

    어떤 때에는 지금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엄숙하고 교조적인 분위기가 녹아난다.

     

     

     

     

     

     

     

     

     

     

     

    아무리 국제적인  스타급 작가라 해도 낯설고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장샤오강의 그림은  너무 우울하고 서늘할정도로  가라앉아 있으며

     왕광이의 팝아트는 어딘가 모르게 짝퉁같은 조잡함이 느껴지고

    위에민준이나 팡리쥔의 캐릭터들은  얼핏 호방하고 유쾌한듯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어있어  왠지 우롱당한 듯한 개운치않은 느낌이든다

    왜 이런 석연치않은 이질감과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20년간의 중국 정치경제 개혁이 없었다면 

    중국현대 예술은 근본적으로 생겨나지도 않았다”고 말할정도로

    중국현대미술은 개방과 개혁으로 풍요로워지는 경제와

    여전히 존재하는 구태의연한 억압적인 정치 사이에서  태어난 미술들이다

    정치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는 특이한 이종 결합으로

    중국은 지난 20년간 다른 나라는 가질 수 없었던 독특한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왔고

    이것이 자연스레 중국 현대미술만의 독특함으로 연결되었다.

    그만큼 중국 현대미술의 이상한 분위기는  중국현대사와 관련이 깊다

     

     

     

     

     

     

     

     

     

     

     

     

    중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은 문화혁명(1966~76)과 천안문 사태(1989)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과 남과 다른 특이한 생각들을 자양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문화혁명의 시기는 그런 예술이 자라나기에는 너무나 모질고 척박한 시대였다.

    예술을 사회주의의 주요 무기로 간주한 중국정부에 의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만이 강조되었고,

    정치투쟁의 과정에서 반대파를 숙청할 때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조차도  탄압당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단지 지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지로 추방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예술활동 자체를 금지당했다.

     

    어린 시절 문화혁명의 혹독한 시기를 거치며

    억압적 체제에 대한 반항심을 키워온 세대가 천안문 사태의 주역이 되었고

      대부분의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바로 이 세대에 속한다

     

     

     

     

     

     

     

     

     
     

    중국 현대미술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부터다.

    당시 중국 공산당에 저항했던 작가들이 외국으로 망명해 활동하면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천안문 사태를 전후해 외국으로 나간 해외파와 ,

    국내에 남아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계속한 작가를 합쳐서

     ‘차이나 아방가르드’ 작가 라고 부른다.

     

    천안문 사태이후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져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정치와 사상의 자유가 없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중국 현대미술은 정치적 무력감을 냉소와 허무, 정치적 풍자라는 코드로 녹여내

    삐뚤어지고 왜곡되거나 허무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중국식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도 녹아들어  이질적인 느낌의 중국 현대미술이 나타났다

     

     이를 두고  미술비평가 리시엔팅은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이라  이름붙였다


     

     

     

     

     

     

     

     Fang Lijun  方力钧 (b 1963)

     

     


     

     

     중국 현대미술의 4대천왕 중 한명인 팡리쥔은  '냉소적 사실주의'의 대표적 작가로서

    그의 예술세계는 중국인들의 영혼을  깊이 할퀴고  간 

    문화혁명 그리고  천안문 사태 와 아주 깊이 관련되어있다

     

    하북성 태생의 팡리쥔은 베이징 중앙미술대학 판화과를 졸업하던 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지자

    이에 분노해 비주류와 반항의 의미를 담은 민대머리 건달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건달들은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건달이라는 의미에서  표현 한것으로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 * 중국 현대미술의 4대천왕: 장샤오강, 왕광이,위엔민 준 , 팡리쥔

     무협지에서나 쓸 법한 명명법인 4대천왕이라는 칭호는 작가를 대중스타화 하여

     흥미를 부추기고 또한 원톱(one-top) 선발 구조의 위험성을 피하면서

    여러 작가를 동시적으로 브랜드화하는 데 유효한 장치로 중국의 대중문화에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단어다

    * 위에민준에 대한 글 : http://cafe.daum.net/musicgarden/2WP4/7080 )

     

     

     

     

     

     

     

     

     

     

     

    팡리쥔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버린 이  민대머리의 건달들은

     실없는 웃음과 모든것이 지루하다는 듯한 하품이 그 특징으로

     중국의 대표적 예술가의 그림속 이미지라고 보기에는 약간 고약하다.

     

    실제 중국 내에서도  그를 당대 최고의 중국미술가라고 추앙하는 분위기 반대편에는

    단순히 자신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서양인의 구미에 맞게끔

    " 중국인을  추하고 무능한 '아Q(阿Q)'의 이미지로 만들어 국제시장에 내다판 매국노"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팡리쥔뿐 아니라 소위 4대천왕이라고 불리는 작가들 모두가 그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그림 속 이미지는 중국 현대사회의 고난과

    그속에서 작가가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깊은 관계가 있다.

     

    팡리쥔은 다섯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문화혁명 시기를 지냈다.

     

     

     

     

     

     

     

     

     

     

    "대지주였던 할아버지는 문혁이 시작되자마자

    곧 인민의 적으로 몰려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지주계급은 광대한 인민 군중의 파렴치한 적이고

    이 세상에서 몰아내야 할 사악한 존재들이었다.

     

    어느날  비판 대회가 열렸다.

    어린 나도  "지주놈을 매달아라!" 라고 외쳤다.

    함성에 이어 긴 모자에 커다란 나무 팻말을 목에 걸고 비판대로 올라온 사람은

    나를 가장 사랑해주었던   할아버지였다.

    사람들은 "팡 지주를 타도하라!"고 계속 외쳐댔다.

     

    멍해진 나는 바짓가랑이 속으로 머리를 파묻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그 혼란과 충격, 의심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이리도 큰 자괴감과 상처를 주는 일이

    세상에서는  선하고 가치있는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수많은 의문과 혼란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역 철도청 최고부서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이후 운전기사가 됐다.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지주 집안’이라며 놀림과 구박을 당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림도구를 사주었다.

    밖에 나가서 놀지 말고 안전한 집안에 머물라는 취지였다.”

     

     

     

     

     

     

     

     

     

     

     

    팡리쥔의 할아버지는 대지주로 문화혁명 시기에 인민의 적이 되었고  집안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팡리쥔 또한 당시의 혼란과 충격으로 마음 속에 깊은 상처을 입었다.

    더욱이 그는 그러한 출신성분때문에 이후 학교생활에서도 수많은 굴욕과 괴롭힘을 받았다.

     전교생이 모두 그에게 침을 뱉으며 때리고 모욕을 준 사건도 있었을 정도 였다.

     

    이런 부조리한 환경속에서 그가 할수 있는것은   억울함을 참는 것과

    가식적인 모범을 보이며 비굴해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뿐이었다.

     

     

     

     

      

     

     

     

     

     

    "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애도하는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눈짓했다.

    눈물을 흘리는 신호였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우는 척하기 시작했다.

    일단 울기 시작하자 그간 내가 겪은 모든 수모와 억울한 일들이 떠올랐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누구보다 심하게 울었다.

    가장 크고 오랫동안. ..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를 둘러싸고 위로하며 사람들 앞에서 칭찬까지 했다. "
     

    그는 평범한 학생으로   중앙미술대학에 입학해

    좋은 직장을 배치받았고 졸업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그 무렵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나의 예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는 당시 중앙미술대 재학생으로서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다.

     

     주위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수많은 학생들을 직접 목격했다.

     

    그때 나의 어린 시절과 연관된 ,

    폭력적이고 모순된 무언가가 다시 일어났다고 느꼈다.

     

    그후 나는 무언가  인간적인 것을 그리고 싶었다.

    ‘나는 당신들이 한 짓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때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는다.”

     

     

     

     

     

     

     

     

      

     


    천안문 사태로 사회의 폭력과 모순을 다시 한번 자각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몰려든 위엔밍위엔 주변을 전전하면서 3년동안 방랑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 그는  중국 사회에서 나타난 "갖가지 폭력과 상처, 가식과 무지,

    반항과 포기, 회의와 자조들"을 표현하고자, 자신과 사회에 대한 풍자로서

    민대머리 건달의 실없는 웃음과 하품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대로 " 모든 것을 상실했고, 실없고, 위기에 처했고, 건달 같고, 막막해' 보이는

    이 개운치 않은 인물들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맑고 쾌청한 하늘 아래 등장했다."

     

     

     

     

     

     

     

     

     

     

    천안문 광장 사태가 중국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국가가 제시했던 이상 상실의 초래였다

    이 상실감은  물질만능주의와 향락적인 대중문화로 급속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없는 현실 속에서  정치적이고 사상적 욕구는 억제당한채 

    오직 경제적 성공에만 집착하는 기성세대의 이런 왜곡된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는듯

    젊은층들 사이에는 냉소적인 포피분위기가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포피란, 중국어로 펑크족 또는 건달,  농담하는 사람, 버릇없는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간파하고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천안문 광장 사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아이콘으로서 팡리쥔이 작품속에 창조한 민대머리 건달들의 인간군상 안에는

    장미 빛 미래에 대한 이상주의가 무너진 현대중국의 정신적 영역의 텅 빈 권태를 조롱하고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항하는 냉소적 시선이 숨어 있다.

     그의 건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본래는 중국사회에 향한 것이었지만,

    자본주의의 천박한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도덕적가치가 상실되고 

     자극적이고 향락적인 대중문화에 함몰되어 개인의 몰개성을 강요하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나 우리현실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팡리쥔은 중국을 넘어서 세계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될수 있었다

     

     

     

     


     

     

     

     

     

     

    어린 시절 연못에 빠져 익사할 뻔한  기억이 있는 그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파란 물속에 든 여러 형태의 자화상 연작을 그리며

    한 숨에 왔다 갔다 하는 생존과 실존의 고민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수면에 잠기거나 수면위로 떠오른 얼굴은

    나르시시즘, 명상, 몽환, 삶의 열락 혹은 죽음 등

    서로 상반되는 복잡한 감정을 환원시킨다.

     

     

     

     

     

     

     

     

     

     

    여기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민대머리 인물군상의 전형을 통해

    절제된 언어로 사회에서 느끼는 개인의 고독감, 익명성 등의 감정을 형상화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禪家와 道家에 공감한 팡리쥔은

    이제  조화와 섭리를  받아들여 더욱 확장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영광스러운 듯도 하고 때로는 불행한 듯도 하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거대한 섭리 안에 그 모든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이자 조화일 뿐이었다. 
     

     

     

     

     

     

     

     

     

      

     

    그의 그림은  윤회의 업과 초월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그는 승화된 해탈의 세계를 엿보는 듯하다.

     

     

     

     

     

     

      

     

     

     

        

    물 속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점차 오색찬란한 깃털의 새들로 환생하더니

    힘찬 날개를 얻은 새들은 그모습이 아득해질 때까지 멀고 먼 하늘로 날아갔다.

    건달들은 그 가뿐하고 찬란한 비행에서 해방을 얻는다.

     

     

     

     

     

     

     

     

     


    최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얼굴이 사라졌다.

    하나 같이 고개를 돌리고 서 있다.

    관객을 바라보았던 조롱 섞인 얼굴이 고개를 돌려 그림 속에 펼쳐진

    넓은 푸른 바다,하늘,혹은 빛을 향해 두 손을 뻗거나 달려나간다.

     

     

     

     

     

     

     

     

     

     

     

    작가가 바라보는 '이상'을 관객이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작가의 의도로.

    이들 바다,하늘,구름과 같은 열린 공간은

    바로 내면적 갈등을 분출시키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장미빛 미래에 대한 이상주의가 무너지고,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차다찬 시선으로 바라본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의 모습.

    그러나 팡리준은 다시 한번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는 현대인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글참조 : 이보연 님의 『이슈 , 중국현대미술』& 기사 外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의 상태이다.

    만약 나더러 완전히 유미주의적인 미술을 하라거나

    미술사적인 각도에서 어떤 미술을 하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사람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예술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내가 얻은 기쁨과 상처는 모두 사람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나의 필생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권력·제도 그리고 시류와 유행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순간까지

    비슷한 영양분을 흡수하며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다.

    모든 아이들이 제일 처음 내뱉는 ‘엄마’ ‘아빠’란 단어 역시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어떤 아이는 공산주의의 전사가 되고,

    어떤 아이는 나치의 병사가된다.

    누구는 자선가로, 누구는 소매치기, 강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아이들의 운명이 정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운명이 정해지는 일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궁금증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작업을 할 때, 인간의 가장 처음 모습이야말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 이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자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될 테니까. .”

     

     

     

     

     

     

     

     

     

     

     

    " 고여 있는 것은 슬프다 "

     

     

     

     

     

     

     

      

     

     

     

     

     

     

      

     

        

      

     

     

     

     

     

     

     

     

     

     

     

     

     

     

     

     

     

     

     

     

     

     

     

      

     

     

     

     

     

     

      

     

     

     

     

     

     

     

     

     

     

     

     

     

     

     

     

     

     

     

     

     

     

     

     

     

     

     

     

     

     

     

     

     

     

     

     

     

     

     

     

     

     

     

     

     

     

     

     

     

     

     

     

     

     

     

     

     

     

     

     

     

     

     

     

     

     

     

     

     

     

     

     

     

     

     

     

     

     

     

     

     

     

     

     

     

     

     

     

     

     

     

     

     

     

     

     

     

     

     

     

     

     

     

     

     

     

     

     

     

     

     

     

     

     

     

     

     

     

     

     

     

     

     

     

     

     

     

     

     

     

     

     

     

     

     

     

    2012 / 03 / 05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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