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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rique Granados(1867~1916) / Romanza - Erica Kiesewetter(Violin), Douglas Riva(Piano)
    ◆ 청취자세상/┗⌒음악가탐구 2012. 2. 14. 08:54

     

     

     

     

     

     

     

     

     

     

     

     

     

     

     

    스페인의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1867~1916)의 경력은 유럽 음악의 역사 가운데에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자 스페인 음악의 국제적인 도약을 대변한다. 그의 창조적 천재성은 당시의 미학적 법칙이나 지적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흘러넘치는 강렬한 개성은 동시대 스페인 작곡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였고, 그로인해 그라나도스는 스페인 음악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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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음악의 중심축, 엔리케 그라나도스

    그라나도스는 1867년 7월 27일 바르셀로나 근처의 레리다에서 태어났다. 육군 대령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호안 밥티스타 푸욜(Joan Baptista Pujol, 1835~1898)을 사사했고 화성과 작곡을 전설적인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 1841~1922)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젊은 그라나도스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 1887년 파리로 가서 샤를르 드 베리오(Charles de Beriot, 1833~1914)를 사사했고, 188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의 첫 번째 야심작인 [스페인 무곡집 Danzas espanalas]을 출판했다.

    그와 함께 했던 음악가들로 스페인 작곡가로 이사크 알베니스마뉴엘 데 파야,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꼽을 수 있고, 유럽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외젠느 이자이, 피아니스트로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 그리고 그를 후원한 작곡가로 카미유 생상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리사이틀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꾸준하게 연주했던 사람들로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일조했던 친구들이었다. 이후 그라나도스는 1901년 아카데미아 그라나도스(Academia Granados)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후일 스페인 음악계를 이끌어간 파뀌타 마드리게라(Paquita Madriguera), 쿤키타 바디아(Conchita Badia), 프랑크 마샬(Frank Marshall) 등이 포함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
    <출처: granados at fr.wikipedia>

    1912년 그라나도스는 미국 피아니스트인 어네스트 쉴링(Ernest Schelling)을 만났다. 쉴링은 스페인 밖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알린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피아노 모음곡인 [고예스카스 Goyescas]를 뉴욕에서 출판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작곡가로 하여금 이 모음곡을 오페라로 만들도록 격려했다. 결국 오페라는 1916년 1월 28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초연되었다. 그라나도스는 이 자리에 참석하여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영불 해협에서 그라나도스가 탄 서섹스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격침된 것이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다

    1910년 43세의 그라나도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침내 나는 중요한 작품을 쓸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 고예스카스!” 이 특별한 작품은 모두 2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1909년부터 1910년 사이에 작곡되었고, 두 번째 작품은 1913년부터 14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1911년 10월 8일 그는 “고예스카스는 모든 시대를 위한 작품이다 … (중략)… 나는 이 사실을 확신한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 고예스카스라는 뜻은 한국말로는 정확하게 풀이되진 않지만 ‘Goya-esque’ 혹은 ‘Goya-like’라는 뜻으로서 고야에 대한 3자의 관점이 담긴 인상주의적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그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전람회를 보고 얻은 영감으로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서, 스페인 사람들과 자연의 고유한 특징과 분위기를 정묘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10년 1권을 완성한 뒤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나는 고야의 심리, 그 팔레트와 사랑에 빠졌다네. 그가 그린 공작부인과 여성들, 전쟁 장면, 사랑의 장면, 의복을 입은 장면, 뺨의 그 장밋빛 순결함과 이와 대조를 이루는 레이스, 검은 벨벳으로 된 옷을 입은 가느다란 허리, 자스민 빛이 도는 하얀 손들, 진주 자개로 만든 장식품들 등등이 검정빛 호박 속에 부유하는 소용돌이처럼 눈을 부시게 한다네”


    그라나도스는 고야가 그린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림은 고야의 [이사벨 데 포르셀의 초상]. <출처 :

    goya at es.wikipedia>

    그라나도스는 자신의 세계관과 유사한 고야의 그림 속에서 정신적인 동질성을 느꼈고, 그것은 분명 스페인적인 요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라나도스는 [고예스카스]에서 씁쓸함과 우아함이 뒤섞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했고, 이러한

    의도에 따라 모든 악장들에서 세련된 시적 감수성이 우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야의 그림 속에 스페인의 전형적 일상,

    스페인적 감수성,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열정의 감정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연애소설 혹은 비극, 아니면 이 둘이 기묘하게 섞여있는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스페인적 요소의 집합체


    그라나도스는 카탈루냐인이었지만 스페인의 모든 지방의 특징과 하나의 스페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존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개별성(지방색)을 전체성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모호성은 [고예스카스]에

    담긴 여러가지 의미의 불분명함을 설명해준다. 또한 사랑과 죽음과 같은 스페인의 전형적 감수성, 대립적 요소가 이루는

    모호함은 마치 세르반테스 소설에 등장하는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관계와도 어울릴 법하다. 스스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그라나도스는 이러한 스페인적인 모호한 요소들을 음악이라는 비언어적, 비시각적 언어로 새롭게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원래 스페인의 민속 선율은 장황함, 형식적 통일감의 부재, 과장된 즉흥연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라나도스는 그

    형식미와 리듬을 훌륭하게 다듬어냈고 동시에 기타와 캐스터네츠 음형을 도입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에 명확한 스페인적

    특성을 불어 넣었다. 이 민요적인 요소는 특정한 실체나 주제가 없는, 근본적으로는 추상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두고 그라나도스의 제자인 프랑스 마샬(스페인 음악 연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스승이기도 하다)은

    그의 히스패니즘을 스페인 특유의 거칠고 도취적이며 극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대신에 우아함과 미묘함, 18세기

    귀족적인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쇼팽이 폴란드인이었고 리스트가 헝가리인이었으며 차이콥스키가

    러시아인이었다면, 그라나도스는 스페인이었다”라고도 말한 바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색채가 깊게 스며들어 있는

    알베니스의 작품 [이베리아]가 코스모폴리탄적 시각, 스페인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을 드러낸 반면에 카탈루냐적인

    [고예스카스]는 오히려 스페인 내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스페인적인 요소들이

    마음놓고 좌충우돌하며 민속적 색채와 정서의 충돌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적인 색채와 정서, 이국적인 매력과 풍물이 집결된 스페인 음악의 결정체이다. <출처: NGD>

    Los requiebros (사랑의 속삭임)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스페인어 표현인 Los requiebros는 속삭이면서 연인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구애의

    모습을 뜻한다. 고야의 ‘카프리초(Capricho)’와 ‘탈 파라 쿠알(Tal para cual)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으로서, 고야의

    출생지방인 아라곤의 무곡인 호타(jota)를 연상시킨다. 18세기 토나딜랴(tonadilla)로부터 차용한 두 개의 프레이즈를

    기본으로 한 변주곡으로서 장식음과 리듬을 제대로 다듬어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In Coloquio en la reja (창가의 대화)
    집 안에 있는 여인과 그녀를 찾아온 죄수가 나누는 은밀하고도 비극적인 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오른손 멜로디는 사람의

    목소리를 연상시키고 왼손은 기타 반주를 묘사한다.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가 밤 공기를 물들이는 변화무쌍한 색채들의

    극적인 반목이 인상적이다.

    El fandango de candil (등불 옆의 판당고)
    서서히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처럼 묘사되어야 한다고 작곡가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배적인 정서는 고양되고 용감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판당고 특유의 강렬함과 그라나도스 특유의 우아함이 결합된 이 악장에서는 기타 주법을 연상케 하는 음형이 점진적으로 매혹적인 옷자락을 흩날린다.

    Quejas, o la maja y el ruisenor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
    발렌시아 지방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녹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 피아노 음악과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음악을 통틀어 가장 시적이고 서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음악은 멜로디와 이에 대한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처녀가 그녀의 나이팅게일을 위해 노래부르고, 그 새는 마지막 카덴차에서 리스트풍의 노래로 화답한다. 악보에 지시된

    멜랑콜리의 정서가 극대화된 명대목이다.

    El amor y la muerte ? Balada (사랑과 죽음 - 발라드)
    2권의 첫 곡은 사랑과 죽음에 관한 발라드다. 다시 말하자면 풍부함과 고귀함에 대한 심오한 노래이자 야만적인 동시에

    미스테리한 존재에 대한 동경이다. 그라나도스의 가장 개성적인 솜씨가 발휘된 작품으로서 고야의 유명한 [카프리초스]

    연작 가운데 하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작곡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예스카스]의 모든 주제들은 ‘사랑과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극심한 고통, 향수어린 사랑, 비극적인 결말인 죽음. 중간 부분에서는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

    게일’과 ‘사랑의 속삭임’의 주제가 등장하며 이 드라마를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슬픔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

    중략)… 마지막 코드는 행복의 포기다.” 한편, 이 부분에는 ‘고통을 겪은 행복인 것처럼 매우 표현적으로’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Epilogo : Serenata del espectro (에필로그 : 유령의 세레나데)
    오페라로 각색되지 않은 유일한 악장으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디에스 이레(Dies Irae)를 사용했다. 기타를

    켜며 사라지는 유령과 불확실한 부드러운 감정들을 묘사한 대목으로서, 그로테스크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알레그로다. 이 작품의 의미 또한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El pelele (지푸라기 인형)
    고야의 같은 제목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스페인의 대중적인 장난감인 지푸라기 인형은 이 음악에서 즐거움과

    함께 아이러니함을 던져준다. 토나딜랴의 정서가 지배하는 위풍당당한 효과를 가진 모음곡의 종곡으로서 오페라에서는

    도입부로 사용되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 곡은 [고예스카스]의 일부는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이 모음곡의 부속물로서

    마지막에 위치한다.


    추천음반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의 관한 한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녀는 그라나도스인 제자인 프랑크

    마샬로부터 스페인적 요소의 정통성을 물려 받았던 만큼 데 라로차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뉘앙스, 열정과 우수에 비견할

    만한 피아니스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70년대 DECCA 녹은 작품에 대한 이상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명반으로 명성이 높고, RCA에서의 마지막 녹음은 음색에 대한 한층 심오한 관점을 보여주는 명연이다. 에두아르도 델

    푸에요의 역사적인 녹음(Philips)도 훌륭하고 포르투칼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르 피차로의 신보(Linn)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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